제 3장 치 세<治世> ❉ 14절 ~ 18절 / 16 절
△ 121~124
遐邇壹體(하이일체) ; 遐 멀 하, 邇 가까울 이, 壹 한 일, 體 몸 체
▲ (오랑캐들을) 멀거나 가깝거나 똑같이 (한 신민으로) 대하니,
△ 125~128
率賓歸王(솔빈귀왕) ; 率거느릴 솔, 賓손 빈, 歸돌아갈 귀, 王임금 왕
▲ (사방 오랑캐들이) 항복하여 우리 임금의 신하가 되었네.
* 遐 멀 하 ; 멀다, 멀리,
* 邇 가까울 이 ; (거리가, 관계가) 가깝다.
↪ 하이(遐邇) = 원근(遠近) ; 멀고 가까움
* 壹 한 일 ; ① 하나 = 一
↪ 보통은 "一" 을 쓰나 '一' 은 '二' 나 '三' 으로 위조가 가능하므로
위조 방지를 위해서는 '壹'로 쓴다.
② 오로지, 오직, 한결같이
* 體 몸 체 ; ① 몸, 신체 → 일체(一體) ; 한 몸
② 수족, 사지 → 체격(體格)
③ 모양, 형상 → 체제(體制) ; 사회적 제도나 조직의 양식
④ 근본, 본성 → 체질(體質) ; 몸의 바탕
* 率 ㉮ 거느릴 솔 ; ① 거느리다, 이끌다
② 따르다, 복종하다
③ 앞서다, 이끌다 → 솔선(率先) ; 앞장서 먼저 하다.
㉯ 비율 률 ; 효율(效率) ; 들인 노력(勞力)과 얻은 결과의 비율.
* 賓 손 빈 ; ① 손님
② 손으로서 묵다, 손으로 대우하다
③ 따르다, 복종하다
↪ 솔빈(率賓) ; 앞장서 복종하다.
* 歸 돌아갈 귀 ; ① 돌아가다 → 귀가(歸家) ;집으로 돌아감.
② 돌려보내다
③ 몸을 의탁하다 → 귀의(歸依) ; 부처와 불법(佛法)과 승가(僧伽)로 돌아가 믿고 의지함.
* 王 임금 왕 ; 임금, 제후(諸侯)
↪ 귀왕(歸王) ; 왕에게 귀의하다, 즉 신하가 되다.
.....................................................................................
◆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
앞 11절에서 경주 김씨의 조상이 <소호 금천씨>라고 하였는 바, 그 내력을 조금 더 살펴보자.
▲ (오랑캐들을) 멀거나 가깝거나 똑같이 (한 신민으로) 대하니,
▲ (사방 오랑캐들이) 항복하여 우리 임금의 신하가 되었네.
이 구절은 바로 한나라 무제 이야기이다.
진나라를 이은 한나라는 장성 너머의 흉노에게 계속하여 시달렸는데, 무제 때에 이르러 북쪽의 흉노뿐만이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의 대대적인 토벌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북으로는 흉노를 치고, 동으로는 조선(朝鮮)을 쳤다.
흉노는 북쪽 여러 부족의 연합체인 바. 연합의 수장을 선우(單于), 각 부족장을 번왕(番王)이라 불렀는데
이 중에 혼야왕과 휴저왕(休屠王)이 있었다.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에 따르면, 휴저왕과 혼야왕이 한나라와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자 선우가 이들을 소환하여 사형으로 그 죄를 물으려 하였다. 이에 혼야왕은 휴저왕을 설득하여 한나라에 투항하려 하였으나, 휴저왕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휴저왕을 살해하고 한나라 곽거병에게 투항하였다.
이 때 휴저왕의 부인인 알지(閼氏)와 장남 일제, 차남 윤이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장남 일제(기원전 134년 ~ 86년)는 이후 무제의 신임을 받아 한나라의 신하로 일하면서 김씨(金氏) 성을 받았다. 7세기 신라의 왕족은 그 가계를 신성시하고자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였다.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서 김부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김유신은 왕경(王京- 서울, 즉 지금의 경주)사람이다 ...... 마침내 그 땅에 이르러 나라를 열고 가야(加耶)라 했다가, 후에 나라 이름을 ‘금관국(金官國)으로 고쳤다 ...............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 금천씨의 후예라 성을 김씨로 한다 하는데, 「김유신비(金庾信碑)」에도 역시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라 했으니, 남가야(南加耶)의 시조 수로와 신라의 왕실은 성씨가 같은 셈이다.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교외에서 비석이 하나 출토되어 현재 시안시 비림(碑林) 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이 비석은 전서체로 3행에 걸쳐 '대당고김씨부인묘명'이라고 새긴 덮개돌과 23행에 최대 27자씩, 총 593자의 예서체 명문이 기록된 지석(誌石)이 함께 발견되었다.
묘지명에는 함통 5년(서기 864년) 향년 32세로 사망한 김씨 부인에 관한 자세한 사항, 즉 김씨의 유래와 김씨 부인의 선조, 부인의 품행과 생활상, 죽음과 후사 등이 기록되어 새겨져 있다. 김씨 부인은 재당 신라인 김충의(金忠義)의 손녀이자 김공량(金公亮)의 딸이다.
특히 묘지명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김씨의 시조에 대한 서술로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태상천자(太上天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 하니,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게 된 세조(世祖)시다. 그 후에 유파가 갈라지고 갈래가
나뉘어 번창하고 빛나서 온 천하에 만연하니, 이미 그 수효가 많고도 많도다. 먼 조상 이름은 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西漢)에 투항하시어 무제(武帝) 아래서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그를 발탁해 시중(侍中)과 상시(常侍)에 임명하고 투정후(秺亭侯)에 봉하시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함에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경조군(京兆郡)에 정착하게 되니 이런 일은 사책에
기록되었다. 견주어 그보다 더 클 수 없는 일을 하면 몇 세대 후에 어진 이가 나타난다는 말을 여기서 징험할 수 있다. 한나라가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에는 성실함과 신의가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독실하고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오랑캐 모습을 했으나 그 도(道)를 역시 행하니, 지금 다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번성했다.⏌
...........................................................................................................................................................................................................................
** 천자문 일천글자 속에는 고대로 가장 중요했던 다섯 가축 중에서, 소(소 우 牛), 말 (말 마 馬),
돼지( 돼지 돈 豚), 개(개 견 犬), 네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유학자 선비의 눈에는 이 가축들의 중요성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 앞 구절은 15절<애육여수 신복융강>, 뒷 구절은 17절<봉명재수 백구식장> 입니다.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절) 개차신발 사대오상 (0) | 2021.01.04 |
---|---|
18절) 화피초목 뢰급만방 (0) | 2021.01.04 |
15절) 애육여수 신복융강 (0) | 2021.01.03 |
14절) 좌조문도 수공평장 (0) | 2021.01.02 |
12절) 퇴위양국 유우도당 (0) | 2021.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