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9절) 연시매최 희휘랑요

한라오스 2021. 1. 23. 22:56

 

                                            제15<종지(終止)> 119~ 125/ 119

945~948

年矢每催(연시매최) ; 해 년, 화살 시, 매양 매, 재촉할 최

                       ▲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가라고 매양 재촉을 하네.

949~952

曦暉朗曜(희휘랑요) ; 햇빛 희, 햇빛 휘, 밝을 랑, 빛날 요

                       ▲ 햇빛은 (언제나 변함없이) 밝게 빛나고 있는데,

 

* 해 년 ; , 새해 연하(年賀) ; 새해를 축하하다

               ② 나이 연세(年歲)

               ③ , 시대, 연대기(年代記) ;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연대순으로 적은 기록. ┈• ∼ 형식의 위인전

 

* 화살 시 ; 화살 효시(嚆矢) ; 우는 살.

                                            ㉯ 어떤 사물의 맨 처음의 비유┈• 근대극의

 

* 매양 매 ; 매양, , 언제나, 그때마다 매년(每年) ; 해마다

                  ② 자주, 빈번하게 매번(每番) ; 번번히

 

* 재촉할 최 ; 재촉하다 죄어치다 최루(催淚), 최면(催眠)

                     ② <> 열다 개최(開催) ; 학술회의를 ~ 하다

         ↪ 연최시(年催矢) ; 화살인양 재촉하는 시간, 연최로(年催老) ; 늙음을 재촉하는 나이

 

* 햇빛 희 ; 햇빛 빛나다.

* 햇빛 휘 ; (나다), 광채 ()광휘(光輝); 환하고 아름답게 희휘(曦暉) ; 햇빛 / 연면어

 

* 밝을 랑 ; 밝다, 유쾌하고 활달하다 명랑(明朗) ; 밝고 환함

 

* 빛날 요 ; (나다) 耀(빛날 요) (빛날 요)

                  ② 일월(日月)과 오성(五星)

                  ③ <> 7 요일

낭요(朗耀) ; 밝게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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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西施)와 와신상담(臥薪嘗膽) ; 엎드릴 와, 땔나무 신,  맛볼 상, 쓸개 담

        앞 절에 이어 미인 서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勾踐)과 오나라 왕 합려(闔閭)의 전쟁에서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상처가 악화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는데, 임종(臨終)때 아들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월나라 구천을            처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 하였다,

 

오나라 왕이 된 부차는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으려고 책사(策士) 오자서와 손자병법의 주인공 손무(孫武)의 도움아래, 평소에 잠자리도 편히 잠을 자지 않고, 항상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자면서 (- 와신 臥薪), 힘껏

노력한 끝에 결국은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다.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한 구천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베옷을 입고 나와 항복하였으며, 오왕 부차는

구천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인 합려의 무덤을 돌보는 일을 시켰다, 이때, 오자서(伍子胥)는 구천을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월나라의 뇌물을 먹은 재상 백비의 권유로 월왕 구천을 살려주게

되고, 오히려 충신 오자서를 백비의 농간으로 자결하게 만든다. 어리석은 군주의 대표적 모습이다.

기원전 484년의 일이다.

 

구천은 노예로 끌려가 합려의 무덤지기로 일하면서, 복수를 다짐하였다.

부차가 병에 걸리자, 그의 변을 손으로 찍어 맛을 보며 그의 병세를 진단하여 부차의 환심을 샀다,

이에 감복한 부차는 송별연까지 열어서 구천을 월나라로 보내주었다. 이와 같이 갖은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은 구천은 오나라에 충성 할 것을 맹세하고 자기 목숨 하나를 간신히 구하여 홀로 월나라로

귀국하였다,

 

월나라로 돌아 온 구천은 원통함을 잊을 수 없어 매일같이 쓰디 쓴 곰의 쓸개를 옆에 두고 쓴 맛을

보면서(- 상담 嘗膽), 월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사력을 키워 오나라를 멸망시킬 기회만을 노렸다.

이때 월나라에는 범려라는 재주 많은 책사가 있었는데, 여색을 좋아하는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미인계(美人計)로 서시를 보냈다.

서시의 아름다움과 금주가무(琴柱歌舞)에 부차(夫差)는 정치는 돌보지 않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밤낮으로 쾌락으로 날을 세웠으니, 나라는 피폐해 졌고, 마침내 17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때를 노려 오나라를 공격하여, 부차를 고소산(姑蘇山)에서 자결시켰다, 결국 서시의 경국지색에 오나라는 비참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에필로그 ; 上有天堂 下有蘇杭 - 상유천당 하유소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중국에서 이토록 떠 받드는 소주(蘇州-상해의 서쪽에 있는 도시)가 바로 오나라의 도읍지였다.

그래서 부차는 이 소주에 있는 고소산(姑蘇山)에 별궁을 짖고, 고소대(姑蘇臺)라 이름하고 서시와 놀았던

것이다.

이곳에는 서호(西湖)라는 매우 유명한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 이름이 서호인 것은 바로 서시 이름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소주 이름도 이 고소(姑蘇)에서 나왔다.

 

서호를 품고 있는 소주는 바로 송시(宋詩)의 작풍(作風)을 확립한 시인으로 평가 받는 소동파의 고향이기도 하답니다.

여기, 한 낭만 시인이 서시(西施)가 노닐던 서호에서 고소대를 그리며 시 한수 읊조렸으니 같이 감상해

봅시다.

서시가 어찌 고소대에만 있겠소이까?

이 시인의 붓 끝에도 어리지 않으리요!

        ❉ 풍교야박(楓橋夜泊) - 장계(張繼)

月落烏啼霜滿天 / 월락조제상만천

달은 지고 까마귀 우는데 찬 서리 하늘 가득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 강풍어화대수면

강변 풍교 아래 고깃배 등불 바라보다 시름 속에 자리에 누우니,

姑蘇城外寒山寺 /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夜半鐘聲到客船 / 야반종성지객선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 객선에 까지 이르네.

                                            (; 새가 울 제 / 풍교(楓橋) ; 서호에 있는 다리 이름)

 

고소대와 한산사(寒山寺)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쪽 멀리 조선에 까지 영향을 미쳐,

    전국적으로 많은 마을에 고소산, 고소성, 한산사 등의 이름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습니다.

    귀하의 동네에는 어떠하신지요?

    필자가 어릴 적 살았던 도시에는 고소대와 한산사 둘 다 있었습니다.

    왜 어릴 적 교육에 이러한 인문 소양교육이 없었을까?

   참으로 못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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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구절은 118절<모시숙자 공빈연소>,  다음 구절은 120조<선기현알 회백환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