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절) 학우등사 섭직종정
제6장 <제가치국(齊家治國)> ❉ 34절 ~ 51절 / 39절
△ 305~308
學優登仕(학우등사); 學 배울 학, 優 넉넉할 우, 登오를 등, 仕 벼슬할 사
▲ 학업을 닦아 여유가 생기면 벼슬길에 나아가,
△ 309~312
攝職從政(섭직종정) ; 攝 당길 섭, 職 벼슬 직, 從 좇을 종, 政 정사 정
▲ 관직을 맡아(갈고 닦은 학업을 펼쳐 백성을 위해) 일한다.
* 學 배울 학 ; ① 배우다, 지식, 기술 등을 익히다
② 학문, 학자, 학교, 학파 → 학구(學究) ; 학문을 깊이 연구하다.
* 優 넉넉할 우 ; ① 넉넉하다, 많다, 후하다 → 우유(優游) ; 한가하다.
② 얌전하다 → 우아(優雅) ; 고상하고 기품이 있다
③ 뛰어나다 → 우열(優劣) ; 우수함과 열등함
④ 광대 → 배우(俳優)
⑤ 머뭇거리다 → 우유부단(優柔不斷)
* 登 오를 등 ; ① 오르다, 높은 데 오르다 → 등산(登山) ; 산에 오르다
② 높은 지위에 오르다 → 등과(登科)
③ 올리다, 드리다, 장부에 싣다 → 등록(登錄)
* 仕 벼슬할 사 ; ① 벼슬하다 → 사관(仕官) ; 벼슬살이를 함
② 일로 삼다 → 급사(給仕) ; 관청이나 회사, 가게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고용한 사람.
❉ 논어(論語)에 “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사이우즉학 학이우즉사)”가 있습니다.
이는“벼슬살이에 여유가 있으면 학업을 닦고, 학업을 닦아 여유가 있으면 벼슬에 나아간다.” 라는 말입니다.
벼슬하면서 배우면 벼슬하는데 이용함이 더욱 깊어지고, 배우고서 벼슬하면 그 배운 것을 징험함이 더욱 넓어진다.
‘사이우즉학(仕而優則學)’은 이미 벼슬한 자를 위하여 한 말이고, ‘학이우즉사(學而優則仕)’라는 말은 아직 벼슬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천자문>은 유학(儒學)에서 많은 부분을 취하고 있습니다.
* 攝 당길 섭 ; ① (끌어)당기다 → 섭취(攝取) ; 좋은 요소나 영양 따위를 몸속으로 빨아들임
② 대신하다 → 섭정(攝政) ; 임금을 대신하여 정치함
③ 돕다, 보좌하다 → 섭중(攝衆) ; 중생을 거두어 보호함
④ 거느리다, 관할하다 → 섭리(攝理) ;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 職 벼슬 직 ; ① 벼슬, 관직,
② 맡아 다스리다
③ 임무, 직무(職務)
* 從 좇을 종 ; ① 좇다, 따르다, 복종하다 → 종군(從軍) ; 군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다
② 일하다
③ 세로, 남북 ≒ 縱 → 종횡(縱橫) ; ㉠ 세로와 가로.
㉡ (주로 ‘종횡으로’ 의 꼴로 쓰여) 거침없이 오가거나
이리저리 다님. .• 전국을 ∼ 으로 누비고 다니다.
* 政 정사 정 ; ① 정사(政事), 나라를 다스리는 일 → 정치(政治)
② 벼슬아치의 직무나 관직
❉ 攝職從政(섭직종정) ; 섭직(攝職) ; 직무를 맡다.
종정(從政) ; 직무를 맡아 일하다.
결국, 섭직(攝職)은 종정(從政)과 같은 말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섭직종정(攝職從政)은 관직을 맡아 (지금까지 학업을 갈고 닦은 바를 펼쳐서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 이리하면 다음 40절에 나오는 주(周)나라의 소공(召公)처럼 “두고두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게 되리라” 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 학(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필자가 좋아하는 <학과 술>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어 한자 적고 넘어 갑니다.
↪ ◆ 유주학선(有酒學仙) 무주학불(無酒學佛)
술이 있으면 선도(仙道)를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불도(佛道)를 배울지니!
◆ 우과개병 십리방(雨過開甁 十里芳)
비 온 뒤 술독을 여니, 그 향기 10 리에 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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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越南) ;
앞서 춘추시대(BC 770~403년)에 춘추5패라 하여 진(晉), 초(楚), 제(齊), 오(吳), 월(越),
다섯 나라가 천하쟁패를 놓고 결전을 펼쳤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잠깐 짬을 내어 월(越)나라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처음에 월나라는 현재 중국의 남부 저장성(한자어로는 절강성 浙江省, 성도는 항주 杭州)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하여 당시 중원이라는 황하 유역과는 지리적으로 대단히 멀리 떨어진 남쪽 변방이었지요.
제갈공명이 활약하던 위, 촉, 오, 삼국시대에 말하는 손권의 오(吳)나라가 바로 이웃인 장쑤성(江蘇省, 성도 : 쑤저우 蘇州) 입니다. 남쪽 변방이라고는 하지만 그후 세월이 흘러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면, 여기 절강성 동북부 해안에
영파(寧波) 라는 항구도시가 있어, 고려와의 활발한 국제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어,
우리와 결코 무관(無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파는 1천3백 년 전 신라 때 젊은 구도승
혜초(慧超)가 인도로 가기 위해 처음으로 기착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월나라는 진시황에게 망하고 나서 소멸되었지만, 그 종족(種族)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중국 남쪽 바닷가에 여전히
잘들 살아남았습니다. 이리하여 이 중 일부가 더욱 남쪽으로 남하하여 지금의 베트남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월(越)나라의 남쪽에 자리하였다고 하여 월남(越南)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여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고, 월남에는 안남도호부 (安南都護府)를 지금의 하노이에
두었다. 이리하여 예전에는 베트남을 안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안동이란 동쪽, 즉 고구려 땅을 안정시키다, 안남은 남쪽, 즉 월남을 안정시키다의 뜻입니다.
그런데 1900년 구한말 극심한 흉년과 일제의 수탈로 인하여 백성이 몹시도 굶주리게 되자 조정에서는 안남에서 쌀을
수입하게 되었는데, 이 쌀 안남미는 찰기가 없어서 조선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이 쌀을 ‘안남미 →알랑미’라 불렀다.
그 후 1970년대에 정부에서는 찰기와 수확량을 높인 ‘개량 안남미’를 개발하였는데, 이를 ‘통일벼’라 불렀다.
이 통일벼는 높은 수확량과 이에 따른 저렴한 가격으로 물가를 낮추고자 하는 정부와 식비를 줄이고자 하는 서민의
요구에 부합하여 ‘정부미(政府米)’라는 이름 아래 대단히 널리 재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통일벼는 밥맛이 시원찮고, 소여물과 볏짚 가마니에 매우 부적당하고, 소득 수준이 늘어나자, 십여 년 후 조용히 이 땅에서 서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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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구절은 38절 <영업소기 적심무경>, 뒷 구절은 40절 <존이감당 거이익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