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7절) 반계이윤 좌시아형

한라오스 2021. 1. 29. 00:22

                                            제8<왕후장상(王侯將相)> 62~77/ 67

529~532

磻溪伊尹(반계이윤); 강 이름 반, 시내 계, 저 이, 다스릴 윤

                      ▲ 반계와 이윤은,

533~536

佐時阿衡(좌시아형) ; 도울 좌, 때 시, 언덕 아, 저울대 형

                       ▲ 그 당시 건국의 대업에 조력한 아형이었다.

 

* 강 이름 반 ; 강 이름 반계(磻溪)

 

* 시내 계 ; 시내, 내로 흘러 들어가는 산골짜기의 시냇물

반계(磻溪) ; 절강성 위수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강으로 강태공이 야인(野人) 시절 낚시를 하던 곳이다.

                   그는 여기서 주나라 文王과 역사적 만남을 가졌고, 나중에 문왕의 아들 무왕 武王 때에 드디어

() 나라를 멸하고, ()나라를 개국한다. 강은 성이고, 이름은 여상(呂尙)이었으며 벼슬이 태공(太公)에 이르렀다.

그래서 통상 강태공이라 부른다. 그가 반계에서 놀았다고 하여 반계는 여상, 즉 강태공을 가리키는 비유가 되었다.

 

 

* 저 이 ; , ; 사람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

               ② () 이탈리아의 약칭으로도 쓰이고 있다

 

* 다스릴 윤 ; (천하를) 다스리다 이윤천하(以尹天下)

                     ② 벼슬아치 한성판윤(漢城判尹) ; 지금의 서울시장

伊尹(이윤) ; 하나라를 멸하고, 은나라 건국의 일등 공신이 된 사람.

 

* 도울 좌 ; 도움, 돕다, 돕는 사람 보좌(補佐)하다.

                  ② 다스리다

 

* 때 시 ; , , (옛날에는 하루를 12신 辰으로 나누었다)

               ② 연대, 세월, 경과

               ③ 그 때, 당시 [後漢書] 以佐時政 ; 당시의 정사를 도왔다.

좌시(佐時) ; 당시의 정사(政事)를 돕다.

 

* 언덕 아 ; 언덕

                  ② 알랑거리다 아첨(阿諂)

     ↪ (언덕 아)        ↔            △ 585 (어찌 하)

         ↪ 阿洲(아주) ; 아프리카      何如間(하여간) ; 어찌 하였든지, anyhow

         ↪ 亞洲(아주) ; 아세아(동 아세아 ; 東亞)

 

* 저울대 형 ; 저울, 저울대, 저울질 하다 전형(銓衡) ; 인물의 됨됨이나 재능 따위를 시험하여 뽑다.

                     ② 평평하다, 고르다 균형(均衡)

아형(阿衡) ; 탕왕이 이윤의 도움을 받아 하()나라를 멸하고, () 나라를 세운 후, 그에 대해 존경심을 담아

                  이윤에게 부여한 호칭이다. 따라서 반계가 강태공을 뜻하는 것처럼, 아형은 이윤을 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후 건국의 공을 세운 일등 공신(功臣)을 뜻하는 보통명사로도 쓰였다.

                  본 절에서는 이 보통명사로 쓰였다.

 

좌시아형 ; 주 이렇게 바뀐 역사를 보면 아형좌시 순서가 맞으나 앞 절(~ )과의 운을 맟추고자

                 ~ 으로 썼다. 이에 따라 이윤반계도 반계이윤이 되었다.

                 13 弔民伐罪(조민벌죄) 周發殷湯(주발은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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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계수록 磻溪隨錄 ; 

                              조선 중기의 학자 유형원 (柳馨遠 1622~73)이 통치제도에 관한 개혁안을 중심으로 저술한 책.

                              26 13 반계는 유형원의 호이며, 수록은 책을 읽다가 수시로 베껴 둔 것이라는 뜻이나,

이는 저자의 겸사이고 체계가 정연한 저술이다. 반계는 강태공의 은유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유형원은 강태공을 자신의 사표(師表)로 삼았기에 반계를 호로 삼았으리라.

반계가 48살 되던 1670년에 완성한 이 책은 꼭 100년 뒤인 1770년에 영조 지시로 경상감영에서 간행됐다.

당쟁으로 부친을 여의고 14살에 병자호란을 겪은 반계가 벼슬길을 단념하고 전라도 부안현 우반동에 칩거해 18년 동안 써 내려간 책이다.

반계는 이 책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핵심 과제로 토지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 개혁을 내세웠다.

그는 사적인 토지 소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토지는 국가에서 경작권을 분배하고 환수할 수 있는 공전제로 해 모든

사람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토지 제도를 비롯해 교육과 인재선발, 세제, 병제, 통화 등

여러 방면에서 구체적이고 정연하게 제시한 개혁 방안들은 그 뒤로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이 펼친 경세론의 디딤돌이 됐다.

반계가 추구한 핵심가치는 다수의 욕망, 요구, 이익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반계는 조선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새로운

국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 역시 다른 유학자들처럼 요순 성인의 시대를 이상으로 본 상고주의자였지만 반계는 그야말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임진/병자 양란을 당하고도 근본적 반성이 없는 조선을 어떻게 개조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 했던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마을 이름이 녹번동인데 한자로 碌磻이라 쓰고 웬일인지 녹반이 아니라 녹번이라 소리하고 있다.

    ↪  ;  돌 모양 록  자갈 땅 락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에서 2009년에 [서울지명사전]이라는 1,5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사전을 펴낸 바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녹번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조정의 청렴한 관리들이 설.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이곳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라에서 받은 록(祿)의 일부를 이 고개에다 남몰래 슬며시 놓아두었는데,

이를 당시 사람들이 관리가 녹을 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이 고개 이름을 녹을 버린 고개라 하여 녹번이 고개

불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서울시가 주관하여, 학자님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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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절은 66절<책공무실 늑비각명>,  다음 절은 68절<엄택곡부 미단숙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