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명산대택(名山大澤)> ❉ 78절~81절/79절
△ 625~628
雁門紫塞(안문자새) ; 雁 기러기 안, 門 문 문, 紫 붉을 자, 塞 변방 새
▲ (국경 요처로는) 안문관, (장성) 자새,
△ 629~ 632
鷄田赤城(계전적성) ; 鷄 닭 계, 田 밭 전, 赤 붉을 적, 城 성 성
▲ (역참) 계전, (요새) 적성이 있다.
* 雁 기러기 안 ; 기러기, 거위 → 평사낙안(平沙落雁) ; ㉠ (기본의미) 모래펄에 날아와 앉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글씨나 문장이 매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아름다운 여인의 맵시 따위를 비유하는 말.
❉ 안 鴈 으로 표기한 판본도 있다.
* 門 문 문 ; ① 문, 출입문
② 집안, 가문(家門) → 경주 김씨 일문
③ 일가, 친척
④ 배움터, 가르치는 곳 → 동문수학(同門受學)
↪ 안문(雁門) → 안문관(雁門關) ; 만리장성의 여러 관문 중에서 지세가 험한 산서성(山西省) 서북방에 있다는 관문.
안문관(雁門關)은 '중화제일관(中華第一關)'으로 불리며 '천하에 9개의 요새가 있으나, 안문이 으뜸이다.[天下九塞, 雁門爲首 천하구새 안문위수].'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봄에
떠났던 기러기가 가을이면 북으로 돌아오는 곳이라 하여 안문이라 이름 했다고 합니다.(관 關 ; 국경 관문)
* 紫 자줏빛 자 ; ① 자줏빛
② 신선, 또는 제왕의 집의 빛깔 → 자금성(紫金城)
* 塞 ㉮ 변방 새 ; 변방, 성채, 국경, 험지
↪ 새안(塞雁) ; 변방에서 바라보는 기러기
↪ 새옹지마(塞翁之馬)
㉯ 막을 색 ; 막다, 차단하다, → 발본색원(拔本塞源) ; 나쁜 일의 근원을 아주 없애 버려서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함. • 부정부패를 ∼하다.
↪ 자새(紫塞) ; 만리장성 축조 때에 서북 변방 감숙성 민현(岷縣) 지역은 흙의 색깔이 자줏빛이어서
‘자주빛 성채’ 라는 뜻에서 자새라고도 불렀다 한다. 새(塞) 자체가 장성이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다.
그래서 새외(塞外)라고 하면 ‘만리장성의 바깥’이라는 말이다.
* 鷄 닭 계 : 닭 → 삼계탕(蔘鷄湯) → 군계일학(群鷄一鶴) ;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사람.
* 田 밭 전 ; 밭, 심다, 밭을 갈다, 농업,
↪ 계전(鷄田) ; 기주(冀州)에 있는 역참의 이름, 돌궐이 거주하던 서북변경지역의 이름 등등 여러 설이 있다.
* 赤 붉을 적 ; ① 붉다 → 적성(赤星) ; 붉은 별
② 발가숭이 → 적나라(赤裸裸) ; 발가벗음
* 城 성 성 ; ① 성, → 성곽(城郭) ; 흔히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안쪽을 성(城), 바깥쪽을 곽(郭)이라 한다.
② 나라, 도읍
↪ 성황신(城隍神)→ 서낭신 ; 터를 지키는 수호신(local god)
<성황신> 한자말이 <서낭신> 우리말로 되었다.
↪ 적성(赤城) → 만리장성 변방 하북성에 있는 성채, 신화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천하의 패권을 놓고 치우(蚩尤)와
겨루어 승리한 고을이라 한다. 기타 여러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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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문리(임진강 판문점)의 추억
◇ 널문리의 유래 ;
① 판문점(板門店)이란 명칭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을 돕기 위해 백성들이 임진강에 대문 널빤지로
다리를 만든 것에서 유래한 널문리를 한자로 고친 것이다.
↪ 이 설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임금에게 백성이 대문짝을 뜯어서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애기로 신빙성이 없다
↪ 임진강이라 부르게 된 것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다.
②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지역이 개성부(開城府) 판문평(板門平)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 부근에 널문다리 板門橋(판문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설과
③ 이 마을에 널빤지로 만든 대문 - 널문이 많았기 때문에‘널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이 설 또한 신빙성이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부엌 문짝도 2짝의 널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부엌, 창고 등의 문은 모두 보통 간단한 1, 2짝의 널빤지로 만든 널문이었다.
이런 문은 사극 드라마에 숱하게 나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④ 필자 생각 ; 지방 곳곳에 약간 넓은 벌판 마을이 있으면 어김없이 그 지역을 ‘벌말’이라고 부른다.
이 벌말이 <너른 벌판 마을>, 옛적에 한자로 기록할 때면 판문평이라 기록하였으리라.
◆ 널문리 그 주막 앞에서
- 촌사람, 2006.09.02.
깊은 골짜기
그 주막집은 어디 갔소
할매의 구성진 타령
그 권주가는 어디 갔소
널문리 그 주막에
사랑이 서렸던 추억 사라진 채
온갖 그리움, 괴로움 흐르고 흘러
혈맥은 막혔소이다.
널문리 그 주막
밥 냄새 가득한 굴뚝은 어디가고
차디찬 분단선만 줄을 그었소이까?
그 할매 어디가고
나그네만 머물러 그리워하오.
널문리 그 주막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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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구절은 78절<악종항대 선주운정>, 다음 구절은 80절<곤지갈삭 거야동정> 입니다.